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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

[열왕기상] 17장 엘리야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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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7회 작성일 2025-04-20 11: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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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rnava, in The Holy Bible 1937>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

 

 북왕국 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의 아합 왕 시대에  ‘엘리야(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 라고 하는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제사장 가문의 출신도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셨을까요? 먼저 우리는 선지자가 언제 등장하는 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는 이집트를 탈출했던 시절부터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을 버리고 여호와만을 섬기기로 약속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계약을 잊어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을 때, 수많은 재앙과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계약대로 한다면, 우상숭배와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을 어기자 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곧바로 심판하거나 재앙을 내리시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선지자’인데, 이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하나님 앞에 범죄한 죄들을 책망합니다. 그래서 그 책망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키면, 율법에 나와 있는 재앙과 심판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선지자를 통해서 잘못을 깨우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죄를 짓고, 그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면, 하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경고대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 엘리야는 특별히 눈에 보이는 것을 잘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말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이적을 통해서 증명하고 제시합니다.  

 

 아합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는 바람에 그 왕비로 인해서 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시돈의 바알을 섬기게 됩니다. 수많은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압제하고, 탄압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숭배하도록 하는 일에 열심을 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의 권위를 엘리야에게 주셔서, 기근을 경험케 함으로 비를 내리고 농사를 주관하는 신이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합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내 말이 있을 때까지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없을 것이요!” 

 하고 사라집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2-4)

 

 엘리야는 아합을 피해 요단 동쪽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살게 됩니다. 신약성경 야고보서에 따르면, 엘리야가 말한 대로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으니, 농사도 안 되고 어려움이 참 많게 됩니다. 아합은 이 엘리야를 잡아서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엘리야도 아합을 피해서 숨어 있는데, 온 땅에 기근이 드는데, 엘리야라고 잘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피할 곳을 예비하시고 그에게 필요한 양식을 까마귀를 통해서 주십니다. 사실, 이 까마귀 같은 새는 사람과 전혀 교류하기 어려운 새입니다. 길들여 지지 않고, 까마귀는 사람의 눈을 피해서 둥지를 짓습니다. 사람들이 까마귀 둥지를 찾기 매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잘 살지 않는 곳에 집을 짓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새를 통해 엘리야의 필요를 채워 주시지요.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5-7)

 

 엘리야가 얼마나 그릿 시냇가 근처에서 머물렀는지 잘 모르겠지만, 비가 계속 내리지 않고 이슬도 없는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니, 요단 강이 마르게 됩니다. 요단 강은 갈릴리 호수로부터 계속 물이 흘러내려 공급을 받는 곳인데, 비가 계속 내리지 않으니까 그 강도 마르고, 그 곁에 있는 그릿 시내도 물이 마르게 되었습니다. 

 

  • 사르밧으로 자리를 옮기는 엘리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8-9)

 

 엘리야도 계속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된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이스라엘 땅이나 유다 땅도 아닙니다. 이방 나라 시돈 땅에 가라고 하는데, 시돈의 사르밧이란 지역에 한 과부에게 가면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십니다. 참 엘리야의 삶도 기구(崎嶇)합니다. 왕에게 한 마디 하고 숨어지내며 까마귀에게 얻어먹고, 이방 나라 과부에게 언쳐 살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과부에게 명령해서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하겠다고 하셨는데, 사르밧의 과부는 하나님을 통해서 직접적인 계시를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무슨 천사를 통해서 ‘언제 엘리야라는 사람이 네 집에 올 테니 잘 영접하라’고 신비체험을 한 것도 아닙니다. 엘리야가 시돈 땅의 사르밧 동네에서 어떻게 그 과부를 찾았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렇게 만남이 이어지고, 엘리야와 그 과부의 가정이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벗어나고 극복해 내는 과정이 하나님의 역사로 이뤄집니다.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0-11)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서 시돈 땅, 사르밧 성에 이릅니다. 우리식으로 엘리야가 외국에 간 것이지요. 보통 외국에 가면, 공항에 누가 마중나오지 않습니까? 팻말을 들고, 아무개씨 혹은 누구 가정. 이렇게 사람이 기다리는데,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르밧 성에 들어가지만, 누가 마중나와서 환영해 주고 맞아주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팔레스타인 땅에 모두 기근이 들어서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다 염려 근심이 가득하지 누가 왔는지 가는지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디 우물이 없을까, 물을 찾거나 땅을 파거나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성문 근처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상당히 먼 길을 걸어왔는데, 물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 여인에게 물 한모금 얻으려고 합니다. 참 신기하게도 이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갑니다. 평상시에는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만, 지금 기근인 상황이지 않습니까? 자기 먹을 물도 빠듯할 텐데, 물을 가져다 주려고 합니다. 

 

 엘리야는 거기에 대해서 물 뿐만 아니라 빵 한 조각도 좀 얻어 먹자고 합니다. 이 여인의 입장에서 참 난감합니다. 기근인데… 물도 부족하지만, 먹을 것을 더욱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이 여자의 말을 한 번 들어보세요. 매몰차게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2)  

 

 지금 빵은 없고, 밀 가루 조금 남았고, 올리브 기름이 조금 남았는데, 그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빵을 구워서 아들과 나눠 먹고 이제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으니 아들하고 함께 기아로 죽겠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러한 데, 남을 신경쓸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르밧의 과부가 나뭇가지를 주웠던 것도 마지막 땔감으로 쓰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그 마지막 한 움큼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서 자기에게 달라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잔인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와서 마지막 빵을 달라고 하는데, 순순히 내어 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땅에는 그런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비록 이방 나라 사람이지만, 이 정도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그 팔레스타인 지역에 시돈 땅 사르밧의 한 과부만 있었던 것이지요.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14)

 

 엘리야가 빵 한 덩이 중에 작은 조각을 내게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 과부와 아들이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는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참 놀랍지요? 이 말을 사르밧 과부가 믿었습니다. 참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어차피 빵 한 덩이 먹고 죽으나 못 먹고 죽으나 밑져야 본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순종합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사후세계(死後世界)를 믿지는 않지만, 예수님을 믿어야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니까 일단 교회에 나와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지요. 건강한 데도 우리가 아프고 병들 때를 대비해서 보험에 들어놓지 않습니까? 만약에 지옥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선 믿어 놓고 보아야지요. 대책없이 믿지도 않고,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노후를 위해 보험도 드는데, 영원한 생명을 위한 보험(?)은 왜 들지 않습니까?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15-16)

 

 마치 예수님시대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기름을 발라 화덕에 구워서 엘리야에게 대접을 했더니, 그 밀가루 통과 올리브 기름병에서 계속 기름이 나옵니다. 언제까지? 기근이 끝나고 다시 농사를 지어서 새 곡식과 기름을 수확해서 먹을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하나님께서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두루 감찰하셔서, 살릴 자를 살려 주시는데, 누가 봐도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르밧의 한 과부의 가정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이스라엘 땅에 수많은 과부가 있었는데, 오직 사르밧의 이 과부에게만 엘리야가 보내심을 받았고(눅 4:25), 그 과부만이 엘리야를 영접했습니다. 

 

  •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심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7-18)

 

 이 사르밧의 과부의 아들이 얼마 못 가서 죽게 됩니다. 병들어 앓다가 죽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병인지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홍역’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아무튼 이 과부가 엘리야에게 가서 하소연을 하는데, 그 내용을 잘 들어보면, 이 여인이 엘리야를 만나, 굶어 죽게 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 죄를 볼 때, 자식이 죽을 만큼 큰 죄임을 알았는데, 그 결과로 아들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과부는 차라리 엘리야가 자기에게 오지 않고, 그냥 아들과 함께 굶어 죽었으면 좋았겠다는 뜻입니다. 자신은 살고, 아들이 죽는 이 비참하고 끔찍한 일보다는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럽다는 것이지요. 부모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사실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이지요. 그것도 사소한 작은 잘못이나 허물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아서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알고 죽으나 모르고 죽으나 마찬가지로 생각할지 모르나 이것은 큰 차이입니다. 구원은 자기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볼 때,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처음으로 외치셨던 말씀이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죄인임을 알아야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큰 죄인인지 모르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가 보여야 자신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테니까요. 

 

 엘리야는 이 사르밧 과부가 죄인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 과정을 적나라게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에도 시돈의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는 것부터가 큰 죄악이지요. 엘리야가 사르밧의 가정에 머물면서, 아마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지도 섬기지도 않았던 자신과 사르밧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임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죽으니, 이제는 두려움과 슬픔이 그녀를 압도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그냥 심판을 받아 죽음으로 그녀의 가정의 이야기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살림으로 가정의 구원과 기쁨을 회복시킴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지요.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19-23)

 

 엘리야의 간구와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이 사르밧의 과부가 체험을 합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녀의 입술이 고백합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24)

 

 밀가루와 기름이 기근 동안에도 계속되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던 그녀가 자식의 죽음과 부활 앞에서는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 사르밧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의 모형’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이 여인은 자신의 죄인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아들의 부활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요. 그 외에는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인됨과 그 댓가는 죽음 뿐인데, 그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죄용서함을 받았고, 예수님의 부활 때문에 우리의 믿음도 완전해 집니다. 그리고 이 사르밧의 과부는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까지 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모든 죄악을 용서받을 은혜의 때가 열린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는 하나님이 참 신이시며, 다른 신은 없음을 확실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요, 소망입니다. 할렐루야!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북이스라엘을 위해서 ‘엘리야’ 선지자를 세우시고, 기근으로 징계하심으로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두 고통을 받고 큰 재앙을 당했지만, 여호와의 종, 엘리야를 구원하시며, 이방 땅 사르밧의 한 과부의 가정도 구원해 주심을 봅니다. 

 

 주님! 구원도 여호와께 달려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들도 주님만을 믿고 섬기며 구원을 받게 하옵소서!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통해,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심을 봅니다. 우리의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복음을 나누게 하시고, 온 세계가 예수님만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만 예배드리며 영광돌리게 하옵소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아침,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오며,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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