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낮설교

[열왕기상] 19장 곤고(困苦)한 엘리야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9회 작성일 2025-05-05 19:56:38

본문

< '천사가 선지자 엘리야를 깨우다', 후안 안토니오>

 

 번아웃 증후군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어떤 직무를 맡아 일하는 중에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을 말합니다. 쉽게 정신적 탈진이라고도 하지요. 열왕기상 19장에는 ‘엘리야’ 선지자가 그런 증상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상을 섬기게 한 가장 큰 공로자(?)는 이세벨이지만, 실무적으로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북이스라엘 가운데 침투하여 각 지역에서 활약한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들과 대결에서 이스라엘의 참 신과 참 하나님은 여호와인 것을 여러 가지 이적을 통해서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면서, 엘리야와 대결했던 바알의 선지자들 450명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칼로 죽여 하나님의 심판을 이뤄냈습니다. 

 

 이쯤되면, 아합 왕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바알 신앙에서 돌이켜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회개는 커녕, 아내 이세벨에게 가서 엘리야의 행한 일을 고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지시(?)를 받습니다.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1-2)

 

 이세벨이 천하의 악녀입니다. 절대로 회개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종인 엘리야를 죽여버리겠다고 공개적으로 공포합니다. 전 이스라엘 지역에 엘리야 수배령이 내립니다. 잡히면 즉시 사형에 처할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 소식을 듣고 참 낙담합니다. 그리고 살고자 도망칩니다.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의 그 당당함과 위엄은 온데간데 없고, 큰 낙심과 무력감과 공포심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 갑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3)

 

 바알 선지자들과 담대하게 싸웠던 엘리야의 모습이 한 순간에 바뀝니다. 이세벨이 자기를 잡으려고 군대를 푸니까 도망가기에 바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큰 이적을 보이고 나니까 그를 따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사환과 함께 남유다 땅으로 도망했는데, 그곳에서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니까 사환은 그곳에 머무르게 하고 하나님이 계신 호렙산을 향해 떠납니다. 

 

 자기 살기도 바쁜데, 자기 사환을 챙기는 엘리야의 모습을 좀 보십시오. 보통은 자기 생명을 위해서 아랫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습니까? 엘리야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차피 자기를 죽이려고 하지 그 종이나 사환이나 목숨을 노리겠습니까? 이세벨은 그럴 수도 있겠지요. 보통 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4)

 

 엘리야가 자기 민족을 깨치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사역했습니까? 3년 반 동안이나 가뭄을 당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힘들었겠지만, 엘리야도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제대로 먹으면서 사역을 했습니까? 겨우 까마귀에게 얻어 먹고, 시돈 땅에 사르밧 과부에게 얹혀 사는  힘든 나날을 보냈다가 얼마나 오바댜와 아합에게 나타나서 바알 선지자들 450명과 제단 시험을 벌이고, 악한 거짓 선지자들을 도륙하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큰 이적을 보고도 생각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세벨과 아합이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이세벨은 왕을 이용해서 권력을 가지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동안에도 온갖 악한 일을 했는데, 전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적과 기적을 본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바쳐서 엘리야가 일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를 따르는 사환이 생긴 정도입니다. 

 

 엘리야가 호렙 산에 가서 하나님께 자기가 행했던 일들을 다 말하고서, 이제 선지자 노릇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기진했습니다. 쓸데없이 갈멜산에서 아합의 전차를 따라 내려오면서, 큰 비가 올 것이니, 빨리 자리를 피하라고 엄청난 거리를 뛰어다녔습니다. 이제는 남유다로 사환과 함께 이세벨의 군대를 피해 도망하니, 얼마나 체력적으로도 힘에 부쳐서, 그냥 이 로뎀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죽이고 빨리 천국으로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5-8)

 

 그곳에서 엘리야는 천사를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음식을 주시고 물을 주셔서 기력을 회복하게 합니다. 떡과 물을 마시고 깊은 잠을 자고 쉬었습니다. 잠깐 잠을 자고 쉰 것이 아니라 2-3일은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40일을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체력을 비축하지요. 그래서 결국 40일 밤낮을 쉬지 않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릅니다. 출애굽기에는 ‘시내산’이라고도 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은 곳이지요.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9-10)

 

 호렙 산에 이르니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질문은 왜 북이스라엘에서 사역을 하고 있어야 할 엘리야가 사역의 현장을 피하여 도망을 했는지 묻습니다. 엘리야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저 혼자는 일 못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이세벨이 시키기는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주님의 계명과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어 버리고, 칼로 여호와를 섬기는 종들을 죽였고, 저만 남았지만, 저도 거기 있다가는 죽은 목숨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1-12)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호렙 산에 서게 하시고, 엄청난 위엄을 보이시는데 큰 바람이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숴버립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큰 불이 엘리야 앞에 내리지만 그곳에도 여호와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을 왜 엘리야에게 보여 주셨을까요? 마치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행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 주시는 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이제까지 한 일이지요. 그런데, 결론은 그곳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적과 놀라운 위엄을 나타내시지만, 기적 자체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놀라운 이적과 기사 자체를 하나님과 동일시 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과 기사를 보고 싶어합니다. 자칫하다가는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는 마술사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실행하는 마치 요술램프의 요정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지요. 

 

 그리고 그 기적을 본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엘리야의 이적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그런데, 엘리야는 늘 이런 기적과 이적을 행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엘리야 뿐만 아니라 주님의 종들도 엘리야처럼 그런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무언가 권위를 가지고 신나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4-15)

 

 불을 보고 놀란 엘리야에게 다시 세미한 음성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갈멜산 제단에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온 도랑의 물을 핥고, 제물을 태웠던 놀라운 기적을 기도로 행했던 엘리야가 왜 이렇게 나약해져 있는지 하나님은 다시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엘리야는 하나님의 질문에 동일한 대답을 할 뿐입니다. 

 

 “저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5-18)  

 

 곤고했던 엘리야가 하나님을 뵈옵고, 다시금 잃어버렸던 사명을 되찾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바알 숭배를 가져온 뿌리가 어디지요? 시돈 나라입니다. 이 시돈 왕의 이름 자체가 ‘엣바알’이고 제사장이었다가 쿠테타로 정권을 찬탈한 왕입니다. 이 시돈 땅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람 나라의 새 임금 ‘하사엘’을 세우십니다.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는 일은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가 하게 되지요. 엘리야의 사역을 엘리사가 이어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이세벨과 아합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위해 새로운 북이스라엘의 왕을 세웁니다. 그가 바로 ‘예후’이지요. 아합과 이세벨이 어떻게 심판을 받게 되는 지, 몇 장 뒤에 보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자신만 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해서, 심한 고립감과 외로움에 직면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키시고 생명을 보존하셨습니다. 7천 명의 사람들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이세벨의 치하에서 숨어서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바댜가 100명의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숨겨서 살리듯이, 그 분들 외에도 하나님께서 여러 경로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계셨습니다. 오늘날도 심지어 북한과 같은 기독교 박해 국가에서도 진실되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붙드십니다. 물론, 순교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엘리야도 그릿 시내가로, 시돈의 사르밧으로 피하게 하시고 숨겨 주신 것도 분명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19-21)

 

 하나님을 만나고, 엘리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의 후계자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엘리야가 빨리 사역의 짐을 벗어버리고 싶었을까요? 아무튼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하신 일은 12제자를 부르시고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어떤 기적이나 이적을 베푸는 일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사명 중에 ‘교육’(혹은 양육)에 해당합니다. 교육도 선교입니다. 오늘 특별히 어린이 주일을 맞아 우리의 자녀들과 어린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배운다면, 엘리야와 같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18장에 등장했던 ‘오바댜’ 같은 인물이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했다고 나오지 않았습니까? 위기의 시대, 나라의 앞날이 밝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곳곳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불러서 자신을 따르게 했는데, 놀랍게도 엘리사는 굉장히 부유한 사람이고, 종들도 있고 가업도 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그 모든 기득권을 내려 놓고, 엘리야를 스승이자, 주인으로 모시면서 길을 따라 나섭니다.  

 

 참,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상의 부귀영화와 자신의 안위와 가족들의 행복한 삶을 포기해야 할 순간도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참 종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열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고자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큰 지진과 불 가운데에서도 참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세미한 음성,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주님은 계시오니, 우리 모두는 참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주님의 영으로 우리의 영을 깨우시고, 깨닫는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주님! 오직 홀로 나만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 같은 고립감과 외로움과 마음의 고통이 때로는 다가옵니다. 주님의 은혜로 다시금 일어서게 하시고, 주님의 양식과 음료를 허락하셔서 새힘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힘차게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오늘 어린이주일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자신의 제자를 세우듯이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과 어린 영혼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고 세우게 도와주옵소서! 먼저, 우리 부모들이 바른 믿음 안에 서게 하시고, 좋은 신앙의 본을 보일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의 참 스승되시며,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로그인 회원가입

방문자 집계

  • 오늘 447
  • 어제 889
  • 최대 1,725
  • 전체 143,439

Copyright © 114.29.138.27.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