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한 아합은 이 모든 것이 자기가 잘 해서 이룬 것으로 착각합니다. 전리품으로 얻는 재산도 상당히 많았을 텐데, 그것에 만족을 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벤하닷을 풀어주고 자기 아버지 때에 빼앗겼던 이스라엘 영토도 돌려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땅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요. 아합은 자기 여름 별궁 근처에 있는 포도밭을 보게 됩니다. 탐스럽게 익은 포도열매들을 보면서, 그것도 역시 가지려고 합니다.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1-2)
아합은 그 포도밭의 주인을 알아보니, ‘나봇’이란 사람입니다. 그에게 상당한 값으로 밭을 살테니, 돈을 받고 팔라고 제안을 하지요. 그런데, 이 나봇은 조상들의 땅을 팔아서 이득을 취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율법에도 금하는 일이라, 정중하게 거절하지요.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3-4)
아합이 자기가 갖고 싶은 땅을 갖지 못하게 되자, 그만 홧병이 납니다. 그 땅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밥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땅 말고도 다른 땅이 그에게 많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꼭 그 땅을 가져야만 할까요? 권력을 가졌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에 기분이 나쁘고 그것 때문에 병이 생길만큼, 고집스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봇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손들에게도 물려 주어야 할 땅이고요.
어떤 사람들은 땅이 마치 영원히 자기 것인냥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는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들은 잠시 거류하다가 떠날 뿐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밥을 먹지 않는 아합 왕을 아내 이세벨이 보고, 그 깟 포도밭을 하나 못 얻어서 그러냐면서, 자기가 해결해 주겠다고 합니다. 이 악한 여자는 나쁜 쪽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갑니다. 율법에 금하는 것을 율법을 이용해서 나봇의 땅을 빼앗습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5-8)
이세벨이 이스르엘 지역의 귀족들에게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제 3자를 이용해서 나봇을 제거하려는 것이지요.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으로 일을 꾸밉니다. 그 일을 지시하지요. 암살 공작이 집안 내력입니다. 이세벨의 아버지, 시돈 왕 엣바알도 왕을 암살하고 왕이 된 사람이지요. 율법의 헛점이 증인 2~3명만 입을 맞추어서 거짓말을 하면, 그것이 사실이 되어 버립니다. 2명을 시켜서 거짓으로 나봇에게 누명을 씌운 다음에 그 지역 사람들이 나봇을 죽입니다. 손 하나 대지 않고, 나봇을 죽이는 이세벨의 악독함을 보십시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이세벨 같은 사람들에게 놀아납니다.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9-13)
생각해 봅시다. 이세벨의 공작에 협조한 이스라엘 귀족들은 공범들입니다. 불량자 2명이 실행에 옮기지요. 이스르엘 백성들은 이들의 거짓말에 속아, 나봇을 죽이는 일에 함께 하여 돌을 던집니다. 이렇게 실행한 백성들은 죄가 없습니까? 속아서 그랬지만, 살인을 한 것입니다. 20장에서 아합이 벤하닷을 풀어주고, 아람 사람들을 보내준 것을 하나님께서 아합과 너의 백성이 대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 말씀대로 꼭 망할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우리 같은 일반 국민들이 정치 지도자들이 거짓말로 선동할 때, 그 거짓에 놀아나서, 큰 죄를 하나님 앞에 저지른다면 그것은 몰라서 그랬으니까 죄가 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속았을지라도 죄가 됩니다. 죄의 경중이야 있겠지만,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항상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남을 정죄하거나 심판하려 들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올무에 걸려든 아합과 이스르엘의 귀족과 백성입니다. 악한 지도자를 따른 것도 큰 죄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도 우리에게 구원자로 보내 주셨고, 수많은 증인들이 오늘도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지하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고, 진리를 분별하려 들지 않고 세상에 속아, 사탄에 속아, 미디어에 속아 죄 가운데서 계속 머물고 있으면 그 끝은 어떻게 될까요? 몰랐다고 해서 용서가 될까요? 무지도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모셔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항상 진리를 분별하려고 애써야 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설사,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나봇’과 같은 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지만, 항상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14-16)
일의 전후를 잘 살피면, 진실이 드러납니다. 어떤 학자가 사건을 조사할 때, 그 사건을 통해서 누가 이익을 보는지 찾아보면, 진실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말이 어디서 출발했을까요? 성경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나봇을 제거하고 아합은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득을 취한 것이지요. 이 모든 거짓과 살인을 꾸민 것이 아합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일을 일반 백성들은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모든 사람들을 속일 수 있지만, 본인 자신도 속일 수 없고, 하나님도 속이지 못할 뿐더러, 그 죄를 충돌질한 사탄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종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십니다. 그리고 살인교사한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법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17-1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미리 엘리야를 보내서, 이세벨이 꾸민 계략을 막을 수 없었을까요? 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아합과 이세벨이 큰 죄를 짓고 나서 보내셨을까요? 다윗은 나발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양털 깎을 즈음 양식을 얻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나발이 거절하자 다윗은 분노하여서 칼을 차고 군사들과 함께 나발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비가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지 못하게 막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범죄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막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면, 그냥 죄 가운데 흘러가서, 그냥 범죄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행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또 제사장이나 레위인이나 율법 교사나, 선지자를 보내신 것은 우리로 범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은 이렇게 내버려 두시고, 범죄함을 기다렸다가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항상 말씀을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인도해 주실 것을 항상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본성대로 범죄하고 넘어집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나봇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불의한 자에 의해서 억울하게 누명도 쓰고, 박해도 박고, 죽임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악에서 구하소서!’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저 지켜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 복수를 대신 해 주십니다. 아합은 사실, 크게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벤하닷을 풀어 준 것, 그리고 아내의 말을 듣고 우상숭배에 빠진 것, 그리고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의 대결을 보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 뿐입니다. 이 사람이 본래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닌데, 악한 아내를 만나서 악한 일을 충동질 당하니까, 분별력이 없이 그대로 따른 것이지요.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20-23)
아합이 이렇게 자신을 악한 일을 하는 도구가 된 것을 ‘자신을 판’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자신을 팔아서 사탄에게 내 주었습니까? 돈의 노예가 되고, 명예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서 그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악을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보다 아내나 자식이나 부모를 사랑해서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나’는 오늘날 또 다른 이름의 아합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합은 자신을 바르게 잡아 주려는 선지자 엘리야를 ‘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야와 관점이 잘못되어 있지는 않은지 항상 말씀으로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자신의 몸이 느끼는 것보다 항상 계기판을 보면서, 균형을 잡습니다. 왜냐하면 내 느낌과 감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25-26)
돈과 권력과 섹스에 사로잡힌 자가 바로 아합입니다. 아합은 그렇게 자신을 잃어버리고, 죄의 노예가 되었더니, 우상숭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 박해하고, 심지어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고, 귀족들이나 부하들이, 그리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도록 이끈 최악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27-29)
사실, 아합이 나봇을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요. 뒤에서 그 모든 악한 일을 꾸미고, 범죄하게 한 것은 그의 아내 이세벨입니다. 이세벨과 결혼을 해서 시돈의 우상 바알을 가져온 것도 이세벨입니다. 아합의 큰 죄는 왕이자 남편으로서 신앙을 이끌어 가지 못하고 계속 아내에게 끌려 다니면서, 그 악한 행위를 용인하고 받아준 데에 있습니다. 이세벨이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나봇을 죽이려하는 것만 봐도, 공문서 위조와 남편의 권력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내버려 둔 죄가 아합에게 큽니다. 20장에서 벤하닷을 풀어준 것은 본인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이렇게 나봇을 죽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악행한 일은 이세벨의 죄입니다. 그러나 부부는 하나님께서 한 몸으로 보기 때문에 아합의 죄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엘리야의 심판의 신탁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려하거나 그 말을 반발하지 않고, 자신 때문에 선한 나봇이 죽었음을 인정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감싸며, 금식하고 좋은 잠자리에 눕지 않은 모습을 보인 것은 아합이 통회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미 지은 죄와 심판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 잠시 지연되고, 비참하게 죽고 짐승의 밥이 심판은 면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만함과 욕심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도 새기지 않는 아합 같은 인물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교회나 사회에서도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경건한 사람들이 이끌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은혜를 내려주옵소서!
혹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권위가 되지 않고, 세상에서 들리는 말이나, 아내나 자식 사랑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뜻을 저 버리며 죄악에 빠지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하옵소서!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주시며, 왕이십니다. 입술로만 고백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따라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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