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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누가복음] 10장 2.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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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2025-07-16 18: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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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s://wpalss.tistory.com/>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5-26)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나와 질문합니다. 그는 모세의 오경을 잘 이해했던 사람입니다. 훌륭한 교사는 늘 자신이 알고 있는 바가 정확한 지 확인하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에는 알고자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는 ‘영생을 얻을 방법’에 대해서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질문이지만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시 여기는 공동의 생각에 대해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생’을 율법을 행함으로 얻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기보다 그 유대인의 관념에서 시작하여 본질을 뚫고 들어가는 대답을 얻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모세 오경, 율법에 어떻게 나와 있는지 확인하십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율법 교사가 아주 명확하게 제시하지요. 이 정도로 모세오경을 꽤뚫어 보는 율법교사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7)

 

 율법의 요구를 정확히 대답합니다. 그러나, 사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당연히 해야할 요구이지, 구원을 받을 전제조건이 아닙니다. 이 부분은 모든 유대인들과 율법교사들이 잘못 이해한 면입니다. 

 

 율법 교사가 한 마디 더 물어봅니다. 그것은 자신이 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했다는 의미로써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28-29)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말을 인정하는 것처럼 하시지만, 율법 교사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을 수행미션으로 제시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원수처럼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변형시켜서 하나님의 자녀인냥 믿고 있는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이단들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 율법교사의 이웃이라고 제시하십니다. 유대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유대인의 입에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답이 나오도록 이야기를 만들어서 제시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0-36)

 

 이 이야기는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요한이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서 참수를 당하자, 그의 시체를 유대인들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들이 수습하여 사마리아 성에 장사를 지내줍니다. 생전에 그렇게 요한을 따르고 했던 유대인들은 헤롯의 눈밖에 날까하여 아무도 장사를 지내주지 않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기 성으로 가져가 장례를 치러 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마리아 성에 세례 요한의 무덤이 있습니다. 정말로 회개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던 유대인인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하며 그의 가르침을 신실하게 따릅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까? 

 

 유대인이나 제사장이나 율법사나 레위인이나 요한의 말을 듣고 제대로 회개했다면 사마리아 사람들을 원수처럼 여길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항상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감정과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십니다.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7)

 

 차마 율법 교사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없어, ‘자비를 베푼 자’라고 애둘러 대답합니다. 정말 바르게 율법을 행한다라고 한다면, 율법 교사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아마도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거나 영생을 얻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을 교훈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지금 이 율법교사는 바로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 앞에서 교만과 위선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글(혹은 문단)의 배치인데, 누가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먼저 이웃 사랑에 대한 부분을 배치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님 사랑하는 법은 어디에 나올까요? 바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드러납니다. 고대 유대인의 문학에서 나오는 글의 구조형태에서 ‘ABBA’로 전개하는 방식입니다. 문법으로 대구법이라고 하나요? 아무튼,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동떨어진 다른 에피소드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중심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38-39)

 

 한 마을은 요한복음에 따르면 ‘베다니’이지요. 여기는 자매만 언급되는데, 오빠 나사로도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첫 번째 단계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가정에 예수님을 모신 것입니다. 그냥 집 안에 예수님을 앉히는 것이 아니지요. 그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 자매가 예수님을 섬기는 모습이 다릅니다. 마르다는 어떻게 예수님을 섬길 지 마음이 매우 분주합니다. 물을 떠 드려서 발도 씻겨야 하고, 빨리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도 해야 하고.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서 조용히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0)

 

 마르다는 일손이 부족한데, 동생 마리아는 언니를 거들생각이 없이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예수님께 동생을 책망해서 자기를 좀 도와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리아를 두둔하지요.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41-42)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께 물을 떠다 드리고,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며, 평안한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처럼 예수님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배우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두 번째 단계는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귀담아 듣고, 새겨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표현 방법일 것입니다. 그것보다 가장 핵심은 먼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영접하며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참 많은 일에 분주합니다. 여러 가지 대내외적으로 봉사활동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난무합니다. 그러나, 다시 본질로 돌아갈 때입니다. 성령으로 임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들으며, 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자가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교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과 교제하면, 주님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용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으로 되지 않는 일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영접하며,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주님께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자신의 오해와 무지를 드러냈습니다. 우리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하고 잘못된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합니다. 주님! 우리가 바르게 주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그리스도인이라 부름을 받았습니다. 늘 기뻐하고 아버지께 감사하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저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주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 점점 온전해지고 변화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사랑을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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